굿바이 카뮈 개정판

네이글과 카뮈

깊은생각 2015. 4. 12. 23:19

카뮈의 부조리 논증이 허술함을 지적하는 네이글의 논증은 매우 날카롭지만 다른 한편으로 얄팍해보이기도 한다. 카뮈의 시지프스는 모호하지만 심오해보이는 반면 네이글의 외부적 관점은 명료하지만 깊은 맛이 없다. 철학의 논증은 문학의 통찰보다는 작은 그릇인 듯하다. 특히 분석철학이 그렇다. 명료함을 얻기 위해서는 풍부함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심오함은 얕은 물을 가리기 위해 물을 흐려놓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불명료한 언어를 가지고 확신있게 논변을 전개하는 카뮈의 스타일리쉬한 문체는 분석철학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풍부함의 징표라기보다는 흐린 물에 가려진 얄팍한 깊이라는 의혹을 일으킨다. 그런데 반대로, 대부분의 철학적 논증은 정서가 메마르고 이성이 지나치게 비대한 자들의 얄팍한 자기확신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장자의 철학은 문학적 상상력 속에 녹아 있다. 읽는 재미가 있고 풍부한 통찰을 준다. 반면 장자에 대한 철학 논문은? 일단 재미가 없으면서 논리적 분석으로 일관한다. 사실은 분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요약 및 리라이팅이 더 많기는 하지만, 아무튼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해냈다고 하자. 그럴 때 무엇이 문제인가. 완벽한 분석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사람들은 계속해서 떠들고 싶어하는 반면 논리적 분석은, 완벽하게 수행되는 경우에, 대화를 종결시키기 때문이다. 논리적 분석이 더 이상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그것이 불완전할 때뿐이다. 반면 문학적 상상력이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그것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논증은 상호작용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심지어 일부 철학자들마저 논증을 기피하는 이유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