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때 품귀 상태였던 법정의 책이라서 샀다. 요즘은 물량이 많이 풀렸는지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않다. 정가가 7000원인데, 정가대로 받았다.
예전에 <<무소유>>를 읽었을 때는 맹물처럼 시시해서 읽다가 말았다. 특히 예상치 않게 197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매우 이질적으로, 시대착오적으로 읽혀졌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담백한 글이 좋다. <<오두막 편지>>는 녹차 같다. 글이 정갈하고 과하지 않다. 무슨 대단한 글, 심오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 곳이나 펼쳐서 한 토막 읽으면, 산골 오두막의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오랜만에 이런 글을 읽으니 인터넷 글이 대부분 악취나는 쓰레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변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냄새가 안 나는 것처럼 인터넷이고 트위터이고 온통 나 잘났다고 목청 돋우고 너 못났다고 핏대 세우는 시정잡배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힘은 절반 정도는 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법정의 삶에서 비롯된다. 같은 글을 다른 전업 작가가 썼다면 그저 평범한 글로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법정의 청빈한 삶이 존경을 받는 것은 약간은 우스운 일이다. 중들이 원래는 다 법정 비스무리하게 무소유로 사는 게 정상이 아닌가. 책에도 나와 있듯 애초에 중은 비구고 비구는 거지라는 뜻인데, 이제는 중들도 내놓고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세상인가.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밥벌어 먹고 사는 직업이 중인 사람이 많은 듯하다. 목사는 말할 나위 없고 철학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직업이 목사고, 직업이 철학 교수인 것이지 비트겐슈타인처럼 전재산을 버리고서 철학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법정의 간소한 오두막 생활은 노르웨이나 아일랜드 시골에 오두막을 짓고 철학을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한 사람은 오두막에서 수필을 썼고, 다른 한 사람은 오두막에서 철학을 했다. 그런데 법정의 삶은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와는 달리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만 감지할 수 있는 문화적 익숙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