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가치, 에너지와 일
에너지의 인간적 형태가 가치이고, 가치의 특수한 형태가 의미다. 에너지의 본질이 일을 하는 힘이듯이, 가치는 인간을 움직여 일하도록 하는 힘이다. 인간이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치가 인간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만드는 힘, 즉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가치의 가장 일반적 형태인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은 휴대폰을 만들고, 자동차를 발명하고, 농사를 짓는 등등을 일을 한다. 이러한 일을 통한 개인의 자기보존과 자아실현처럼 보이는 가치 활동의 이면을 보면, 하나의 사회가 체계를 이루어 돌아가도록 그 구성원들을 동기부여 하는 것이 사태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즉,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학자가 되고,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기업가가 되고, 신을 추구하는 사람은 종교인이 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 가치추구 활동의 개인적 측면이라면, 이 개인적 가치추구 활동의 총합으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의 시스템이 구성원들을 사회적 분업 속으로 효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는 가치의 특수한 형태다. 가치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의미는, 모든 인간이 아니라 특수한 인간, 즉 실존적 인간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이다. 실존적 인간은 삶의 허무를 인식한 자기의식적 인간인데, 이들을 동기부여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의미이다. 실존적 인간이 인식한 허무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앞서의 가치에 대한 정의에 따라, 실존적 인간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을 부정하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돈이나 쾌락, 사랑 같은 통상적인 가치들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며, 그 결과 허무주의자들은 사회적 분업 속의 가치 활동에 종사하지 않거나 매우 비효율적으로 참여하는 이방인, 부적응자가 되며, 심할 경우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져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대 사회의 과학적 세계관은 신을 추방하고 자유를 얻는 대가로 허무주의에 감염된 실존주의적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의 실존적 인간에 대비되는 전근대인들이나 하이데거 식으로 말해 Das Man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일상인들은 의미 없이도 살아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이나, 먹고 마시고 생식하며 그저 연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들은 굳이 의미가 없이도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허무를 인식한 실존적 인간은 기존의 가치들로는 동기부여를 할 수 없기에, 현대 사회는 허무주의에 대한 해독제로서 의미라는 특수한 가치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삶의 의미를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그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가치 체계의 특수한 형태로 이해할 때, 우리는 의미라는 특수한 가치이자 힘의 원천이 바로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 본질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테제가 결국은 옳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존주의자 또는 명상주의자들의 통념과는 달리 삶의 의미는 개인의 내면 속에서 혹은 영성 따위에서 찾아지지 않으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흘러나온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의 내면 속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의미란 것들도 사실은 시스템으로서의 사회가 개인의 내면에 심어놓은 가치 체계의 한 형태가 반영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실존의 주체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카뮈나 사르트르도 소설가나 철학자 따위의 사회적 분업의 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되며, 영성류의 소위 초월적 진리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명상가들도 결국은 구루니 뭐니 하는 사회적 분업의 한 역할을 맡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사회적 관계를 초월하지 못하며, 초월적 가치라는 것들도 결국에는 사회적 분업의 한 형태로 포섭되고 만다. 예컨대 예수와 석가모니가 세속을 버렸다 한들 종교지도자라는 사회적 분업 시스템 속의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가 각 개인들에게 동기부여하는 가치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삶의 의미를 바라볼 때, 우리는 삶의 의미가 하나의 궁극적 정답으로 구성된 단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개인이 하나의 단일한 가치를 궁극적 삶의 의미로 삼는다면, 모두가 한 종류의 일만 하게 되어 사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각 개인은 사회적 분업의 체계와 대응되도록 다양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삶의 의미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