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인생론
인생론을 보수파의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라고 까는 책이다. '자기완성'이라는 인생론의 목표가 허구적이라는 주장은 참신하다.
"자아의 완성 또는 탁월한 인격의 달성을 계발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자아는 완성될 수 없으며 탁월하지 않다고 해서 인격이 아닌 것은 아니다." (133쪽)
그런데 그로부터 도출되는 해법은 두루뭉수리하다.
"문제는 자아와 인격이라고 불리는 그 이미지의 구성 방식이다. 이미지는 꿈이자 상상력이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그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꿈과 상상력'...너무 추상적이라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는 곧바로 일요 화가를 본받아 '일요 철학자'가 되자고 제안한다.
이 대목에서 줄리언 바지니의 <<빅 퀘스천>>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철학자의 직업적 편견"에 불과한 것을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강매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문고판 134쪽 짜리를, 그것도 14행짜리로(보통 다른 책은 23~4행 정도다), 게다가 각 챕터 표지도 한쪽이면 될 것을 네쪽으로 만들어서 총 8장*4=32쪽이 억지 페이지 늘리기인데, 가격이 12000원이다. 보통 스타일로 만들었다면, 70~80쪽 정도 나올 책이다. 주제나 내용의 무게로 봐서도 12000원은 과한 책이다. 특히 자기계발서 분석 부분은 서동진이나 이원석의 작업에서 저자가 더 덧붙인 점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가 영문학 박사인데, 문장이 딱히 좋지도 않다. 진보나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의 글에서 많이 쓰이는 '서사' '담론' '주체' '호출' 같은 상투어가 불필요한 곳에까지 남발되는 것이 읽는 맛을 떨어트린다. 아마 이오덕 씨가 봤다면 개탄해마지 않았을 것이다.
논거를 제시하는 방식도 프로이트나 바디우 같은 유명 학자들을 인용한 다음 그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데, 마치 그들의 유명세가 그들의 말에 참임을 보증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것이 저자의 의견과 동일하다는 건지 아닌지도 밝히지 않고 술에 물 탄듯이 스리슬쩍 넘어가는 게 영 거슬린다. 논증의 치밀성이 떨어진다.
다만,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언급한 부분은 새롭게 접하는 얘기라서 흥미로왔다. 내가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이 주제로 책을 썼던 사상 최초의 인물이 1870년대의 톨스토이가 아닌가 하고 따져보고 있는 중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