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법칙
인문학 열전에서 빠진 얘기
깊은생각
2012. 3. 1. 16:07
엊그제 방영된 KTV 인문학 열전을 보니 녹화 분량의 절반 정도가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마지막에 허무주의를 논박하는 부분이 축약된 부분이 아쉽다. 어찌보면 끝에서 살린 부분들은 부수적인 내용들이고, 빠진 부분이 핵심인데 녹화할 때 약간 버벅거렸던 부분이라서 빠진 것 같다. 복원하면 다음과 같다:
허무주의의 허술한 논증 가운데 하나는 "인생에 목적은 없다. 따라서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논리다. 의미의 의미는 최소로 잡아도 7가지쯤 된다. 목적으로서의 의미는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1/7이 부정된다고 해서, 전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카뮈>>에서 의미의 의미로 제시한 것은 로버트 노직이 <<Philosophical Explanations>>에서 전개한 주장을 빌어온 것이다.
1. 인과적 관계로서의 의미
2. 지시적 관계로서의 의미
3. 의도와 목적으로서의 의미
4. 교훈으로서의 의미
5. 개인적 중요함으로서의 의미
6. 객관적 가치로서의 의미
7. 본질적 가치로서의 의미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위의 7가지가 모조리 부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허무주의자들은 이 가운데 3번 하나만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나머지 모두가 부정되는 것처럼 과장하는 논리를 편다. 3번이 가장 손쉽게 속아넘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목적으로서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신적인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과 우주를 창조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면 3번의 의미가 쉽게 부정될 수 있는 것으로 속아 넘어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의 목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르트르가 말했듯 개인의 Life Plan을 통해 목적을 확보할 방법은 남아 있다. 설사 3번의 의미가 부정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의미들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3번뿐만 아니라 1, 2, 3, 4, 6, 7을 모두 부정하는 허무주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5번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5번에서 무너질 때 우리는 허무주의에 패배하게 된다.
허무주의의 허술한 논증 가운데 하나는 "인생에 목적은 없다. 따라서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논리다. 의미의 의미는 최소로 잡아도 7가지쯤 된다. 목적으로서의 의미는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1/7이 부정된다고 해서, 전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카뮈>>에서 의미의 의미로 제시한 것은 로버트 노직이 <<Philosophical Explanations>>에서 전개한 주장을 빌어온 것이다.
1. 인과적 관계로서의 의미
2. 지시적 관계로서의 의미
3. 의도와 목적으로서의 의미
4. 교훈으로서의 의미
5. 개인적 중요함으로서의 의미
6. 객관적 가치로서의 의미
7. 본질적 가치로서의 의미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위의 7가지가 모조리 부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허무주의자들은 이 가운데 3번 하나만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나머지 모두가 부정되는 것처럼 과장하는 논리를 편다. 3번이 가장 손쉽게 속아넘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목적으로서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신적인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과 우주를 창조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면 3번의 의미가 쉽게 부정될 수 있는 것으로 속아 넘어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의 목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르트르가 말했듯 개인의 Life Plan을 통해 목적을 확보할 방법은 남아 있다. 설사 3번의 의미가 부정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의미들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3번뿐만 아니라 1, 2, 3, 4, 6, 7을 모두 부정하는 허무주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5번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5번에서 무너질 때 우리는 허무주의에 패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