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영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깊은생각 2014. 1. 14. 22:51

죽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후 세계의 가능성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읽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개념의 지도 그리기를 통해 전자의 독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겠지만, 후자의 독자에게는 약간은 실망스러울 것이다.


진화적 생존가치에 중점을 둔 감정의 포괄적 합리성과 논리의 정밀세공을 기하는 이성의 미시적 합리성 사이에 상당한 불일치가 있어서, 셸리 케이건의 분석철학적 접근법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불안, 공포, 두려움, 슬픔을 경감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에피쿠로스의 죽음 논증이 우리의 감정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예컨대 고소공포증은 우리가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소공포증을 철학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철학으로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에피쿠로스 논증이나 루크레티우스 논증에는 분명히 철학으로써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해보려는 '애처로운(?)'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가. 케이건의 논리는 빙빙빙 돌아서 결국은 상식적 관점으로 복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석철학적 스타일의 쪼잔하고 장난스럽기까지 한 사고실험의 한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걸 느꼈다. 더 큰 외부와의 맥락이 단절되고, 죽음이란 사건을 고립시켜 그 협소한 내부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시야가 좁고 빤한 얘기들만 나온다. 철학적 상상력을 대담한 전제를 세우는 데 투입하지 않고, 단지 주어진 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세세한 결론들로 쪼개 들어가는 작업에 투입하는지라 본질적으로 쪼잔할수밖에 없다. 대담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분석철학의 전형적 한계다. 함부로 뻥을 치진 않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저자
셸리 케이건 지음
출판사
엘도라도 | 2012-11-2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JUSTICE’·‘HAPPINESS’에 이은 아이비리그 3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