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유전자의 생존기계라는 관점
여러분이 다음에 동물이나 식물을 볼 때면, 가만히 응시하면서 되뇌어보자. '내가 지금 보는 이것은 이것을 만든 유전자들을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기계다. 나는 유전자들의 생존기계를 보고 있다' 다음에 거울을 볼 때면, 이렇게 생각하자. '나 또한 유전자들의 생존기계다.'
리처드 도킨스,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 P. 74-75
리처드 도킨스의 말은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든 사례가 생각난다. "스마이시스라는 친구를 불태워라. 그러면 재가 남는다. 이 때 사람들은 말한다. 스마이시스의 본질은 재다." 웃기는 얘기다. 재가 피와 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스마이시스는 1000도의 온도라는 조건에서는 재가 되고, 30도의 온도라는 조건에서는 피와 살로 살아간다. 조건에 따라 양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본질은 재냐 또는 피와 살이냐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양태의 다양성이다. 종의 다양성을 인정하듯, 양태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의 양태가 다른 양태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보는 이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도킨스의 말대로 생명은 유전자의 생존기계가 맞을 것이다. 그런 한 양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더 특권적 본질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명은 유전자의 생존기계이지만,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것만은 아니다. 오류가 발생하는 전형적인 경우는 완전히 100% 틀린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부분적인 진리를 전면적 진리로 강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