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자아라는 개념

깊은생각 2013. 2. 6. 07:37

자아가 허상이라는 불교적 또는 명상적 관점에 대해, 상식인 대부분은 자아가 없다는 도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볼 때 자아가 없다는 관점은 하나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가설로 인정된다. (ex. 흄의 인상의 다발론). 그러나 다른 한편, 자아가 있다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허상이라면 자아가 없다는 도사 또는 일부 철학자들의 생각도 허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무아의 논리는 자아가 실체가 없는 인상들의 다발을 통칭하는 '가설'에 불과하므로 허상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무아 역시 인상들의 다발을 통합하는 주체를 부정하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체를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즉 두 개의 선택지가 모두 정합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둘 모두 가설이라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아가 있다는 가설을 '자연발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매우 오랜 기간의 명상 훈련을 한 소수의 사람들, 혹은 특수한 방식으로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만 자아가 없다는 가설로 '개종'한다. 사실은 인류 문명 자체가 자아가 존재한다는 가설 위에 설계된 것으로 봐야 한다. 자아는 없다는 불교 또는 흄의 주장은 '철학적으로는' 참일 수 있다. 고도의 명상 수련을 한 특수한 개인은 자아가 없다는 철학적 사유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사고 방식으로 일상적 삶을 영위하기는 힘들다. 서재에서는 자아의 실체성을 부정했던 철학자 흄도 일상생활에서는 상식적 관점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백번을 양보해서 몇몇 개인이 실제로 무아의 가설 위에서 일상적 삶을 좌충우돌하면서 영위할 수 있다 하더라도(지인에게 돈을 빌려놓고 자아란 없으니 그 돈을 빌린 건 내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도사파들이 있다. 심지어 성폭행을 해놓고도 자아가 없으니 자기가 한일이 아니라고 우기는 자도 있다), 사회 전체가 그러한 철학을 채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사회 전체가 무아의 가설을 채택하는 순간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예컨대 자아가 없다면 소유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집이 누구 것인지를 확정할 수 없다. 주민등록번호도 매길 수 없으며 운전면허증도 발급할 수 없고, 결혼제도도 붕괴한다. 도둑과 살인자의 처벌도 불가능하다. 자아가 없으면 처벌할 행위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무아의 가설은 철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불가능하며, 개인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아냐 무아냐는 사실이냐 거짓이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가설을 채택한 집단이 살아남느냐의 진화론적 문제에 가깝다. 자아론과 무아론은 철학적으로는 각자의 정당성을 가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아의 세계관이 무아의 세계관보다 적응력이 강하다.

무아라는 개념 위에서 사회가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일 것이다. 짐승들과 나무들은 자아라는 개념에 입각해 있는 것일까? 자아 개념은 없지만 적어도 정체성 개념은 있을 것이다. (불교나 흄의 관점은 '자아'는 물론 정체성까지 부정한다) 무아가 인간을 초월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이하로 내려가는 것일까? 불교의 무아가 의도하는 바는 인간 이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겠다는 것일 것이다. 문제는 초월한 무아들의 사회가 존립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