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과학에 모순되지 않는 종교에 대하여

깊은생각 2012. 7. 28. 00:19

21세기의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제도권 종교는 없다. 누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돈을 받아챙기는 사람이 있다 하자. 그 사람을 사기죄로 고발한다면 100%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신성한' 법정에서 부활이라는 헛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에 와서 종교는 마치 민주주의 시대의 왕의 위상처럼 어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전통 문화니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으니까 그냥 봐주는 측면이 강하다. 조상이 와서 진짜로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빠트리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교라고 해서 양자역학과 맞아 떨어지느니 어쩌니 하지만 윤회를 비롯한 불교 교리의 상당 부분도 현대 과학과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종교가 가능할까? 아마도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도 창시되는 시점에서는 당대의 과학지식과 크게 모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니까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나,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수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은 21세기의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종교가 창시되어야 할 시점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주의적 지식인을 위한 종교의 후보로는 무엇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많은 이들이 수행하는 명상이야말로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궁극적 진리를 깨닫는다거나 우주와 합일한다는 주장은 별로 과학지식과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한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어떨까? 철학의 방법론은 논리와 실증과 직관이다. 무한에 대해 철학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은 무언가 약간은 종교적인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니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어떨까. 어쩌면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 21세기에 걸맞는 종교의 형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의미는 과학적 지식과 모순되기는커녕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과학 등 과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만 올바로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는 반드시 초월적 대상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무한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종교는 아니지만 뭔가 종교적인 뉘앙스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