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아래가 절대적 개념이 아니고 상대적 개념이듯, 시작과 끝도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일 수 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것처럼, 더 넓은 관점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 바깥의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시작과 끝이 사라지는 관점은 어디에서 확보될 수 있을까. 단지 스티븐 호킹이 말한 "북극에서는 북쪽이 소멸한다"는 식의 비유와 유추로만?

우리의 시각적 상상력만으로 위와 아래의 구분은 소멸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상상력만으로는 시작과 끝의 구분을 소멸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우리의 의식은 "시간 자체가 없는 상태"와 "공간 자체가 없는 상태"를 상상하지 못한다. 기껏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정지한 텅빈 공간으로서의 진공 역시 절대적 무는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 의식의 바탕이다. 캔버스가 없으면 그림이 사라지듯, 시간과 공간 개념이 없이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다. 의식은 캔버스를 떠나지 못한다.

"의식은 의식의 부재를 의식할 수 없다"는 제시 베링의 명제를 따를 때, 시공간은 1차적으로는 대상이 아니라 인식에 속하는 형식으로 보인다. 물자체 차원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을 수 있다. 물론 인식이 세계의 구조의 '일부'를 내부에 복제하는 기능이라고 볼 때, 시공간도 세계의 일부 속성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시공간이 세계 속성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말은 시공간을 배제한/초월한 세계를 논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상상의 바깥으로 나간다면 더 이상 상상이 아닐 것이다. 제시 베링이 말한 대로 의식이 무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를 의식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기능을 획득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초월적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생존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인 것일 수 있다. 더욱 진화된 의식은 그러한 상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명상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이러한 의식을 말하는 것일까.

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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