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서평가답게 능수능란하게 요약 정리를 잘했다. 다만 마지막에 삼천포로 빠진 게 역자로서 좀 기분이 찝찝하다.  장정일은 잘 나가다가 막판에 <<신없는 사회>>와 대비시키기 위해 제시 베링의 <<종교본능>>을 신을 긍정하는 책인 것처럼 낙인을 찍어버렸다. 내가 볼 때 서평의 논지를 위해서 책 내용의 특정 부분을 맥락에서 떼어내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지 않고 서평을 썼거나...

제시 베링은 분명 리처드 도킨스와는 달리 종교의 긍정적 기능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적으로 우리의 조상에게 과거에 기능했던 것으로, 현재에는 더이상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대타자로서의 신의 관념이 유전자의 생식적 관점에서 유용하였을 것이라는 진화론적 가설은 주로 인간이 80명 정도의 군집생활을 하던 원시적 과거에 잘 들어맞는다. 그 시절에는 도덕적 위반이 발각되는 것은 집단에서의 추방의 위험을 불러오며, 집단에서의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도덕적 위반 행위가 발각되더라도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도피 가능하다. 신의 관념 때문에 비도덕적 행위를 삼가한다? Not any more. 도덕적 위반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추방과 왕따의 직접적 위험이 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감시카메라와 CSI식 범죄과학수사 기법이 신의 심판을 더 강력하고 확실하게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이 도덕적 위반을 삼가는 것은 감시하는 대타자로서의 신 관념 때문이 아니라 사법적 처벌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제시 베링이 마지막 장의 마지막 부분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 볼테르가 한 유명한 말처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타당한 논리였다. 하지만 기억하라. 볼테르는 이것을 1768년에 프랑스 계몽주의 시기에 썼다. 줄잡아 말해도 그때로부터 세상은 바뀌었다. 오늘날의 사회적 추적 기술이라면(현대세계에서 현재 행동을 규제하는 효과적 장치들을 꼽자면 주민등록번호, 인터넷, 몰래 카메라, 발신자표시전화, 지문,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거짓말탐지기, 얼굴표정, DNA, 및 필체감정 등이 있다.) 볼테르의 선언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적어도 대규모 선진국에서는 그러하다. 오늘날 수백만 개의 초인적 가상의 눈들이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고, 우리 생활의 모든 구멍 속에서 조심스럽게 박혀있는 시대에 누가 볼테르가 말한 '하늘 위의 눈(eye in the sky)을 필요로 할까?

<<종교본능>>p. 259-260

<<종교본능>>은 신이라는 관념이 마음이론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에 뿌리를 둔 생물학적 현상임을 밝힘으로써, 종교를 문화와 교육의 산물로 본 도킨스와 대립한다. 종교가 단지 문화와 교육의 산물이라면 과학기술의 발달이 신관념을 근절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 근거에서 비롯된다면 뇌수술을 하지 않는 한 신관념을 뿌리 뽑기 힘들게 되는데, 제시 베링이 이 책에서 증명하고자 한 것이 바로 신 관념이 뇌 생물학적 근거(어찌보면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의 개념은 과거에 분명히 진화적으로 생존가치를 지닌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기술 기반의 도시사회에서는 더이상 신이 필요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만 그것이 뇌속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 떨쳐내지 못할 뿐이라는 것. 혹시 장정일 씨의 서평을 읽고 <<종교본능>>이 종교를 옹호하는 책이라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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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덕분에 인간이 원숭이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비천한 출신 성분이 밝혀진 것에 화를 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20세기에 제인 구달이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도구적 인간이라는 개념도 폐기되었고, 또다른 과학자들이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데 성공하고, 침팬지와 인간의 DNA가 99%의 싱크로율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인원과 인간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직도 인간이 '특별'하다는 견해에 찬동하는 과학자들은 마치 인종주의자들처럼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그것이 과학적 실험 결과일지라도 그 결과를 함부로 발표하기에는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학자공동체의 매서운 질타를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으로까지 불과 1세기만에 상황이 반전되었던 것이다. 제시 베링은 이러한 '역편견'에 맞서 인간을 동물과 다른 고등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다.

표지 시안.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내가 왜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오래 동안 사로잡혔는지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1~3장을 김태희가, 4~7장을 내가 번역했다. 프로번역가 답게 앞장의 문장이 좀더 매끄럽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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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어투를 흉내내서 말하자면, 참으로 신비한 것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도대체 왜 우리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그토록 끈질기게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는, 신비한 것은 신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끈임없이 제기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제시 베링의 대답을 차두리 식으로 말하면  "간 때문이야"가 아니라 "마음이론(theory of mind) 때문이야"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회문화적 바이러스에 감염되기에 앞서, 우리의 뇌가 인생의 목적, 세계의 의미, 신적 존재에 대한 생득적 사유 형식을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 형식은 우리의 인지 체계가 진화해온 경로를 반영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두뇌는 인과적 설명에 입각한 진화론보다는 목적론적 설명에 입각한 창조론을
선호하도록 자연선택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론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타인에게도 나와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능력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게 당연한 거지 뭐가 대단한 능력이라는 걸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사회적 경험들에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즉각 그가 지니는 관념들, 감정들, 생각들로 번역하는 능력(즉 마음이론)이 없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과 앤드루 멜초프는 <아기들은 어떻게 배울까>(2000)라는 책에서 악몽 같은 예를 들었다. 이 저자들은 우리더러 이렇게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 식당의 식탁에 앉은 손님의 시점을 취해서 한 가족의 평범한 저녁 식사에서 오가는 대화를 그저 관찰하고 있다. 그 가족 중 한 명, 즉 아이가 형이 괴롭히자 울음을 터뜨린다.

우 리는 남편들과 아내들과 어린 형제들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보는 것은 옷들을 채우고 있고 의자에서 늘어져 있는 피부 자루이다. 그 피부 자루들의 꼭대기에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작고 검은 점들이 있고, 그 아래에서 구멍 하나가 더러 소음을 낸다. 그 자루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때때로 그것들 중 하나가 우리를 건드린다. 구멍들은 모양이 변하고, 때때로 두 점으로부터 짭조름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종교본능>p. 36

사실 이 사례는 마음이론의 사례라기보다는 실체성 인식의 사례로 보인다. 주관적 관념론 철학자 버클리의 주장 대로세계를 감각적 지각의 단순한 집합체로 여긴다고 할 때 (즉 그러한 감각적 지각을 일으키는 속성을 담지하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전제할 때) 세상이 얼마나 기괴하게 나타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보다는 제인 구달로 대표되는 내셔설지오그래픽 다큐먼터리가 불러온 편견(?)과는 달리 침팬지가 인간처럼 타인의 마음을 추론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이론이 무엇인지를 좀더 쉽게 이해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아크릴 칸막이로 된 두 개의 구멍 가운데 하나에 손을 내밀면 음식을 준다. A라는 사람은 눈을 뜨고 있고, B라는 사람은 눈을 감거나, 가리개로 가리거나, 뒤돌아 있거나 심지어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있다. 인간의 경우는 두살배기 아이라도 당연히 A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은 음식을 달라고 내미는 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즉 타인의 마음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침팬지의 경우는 어느 한쪽에 특별한 선호를 하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인간과 99%의 유전자 싱크로율을 보인다는 침팬지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타인의 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 즉 마음이론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실험은 인간을 자연계와 구분되는 특수한 존재로 끌어올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린, 방법적으로 잘못된 실험이라고 공격받는다. 침팬지가 자기 종이 아니라 인간 종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라고 요구받은 것은 잘못이다, 실험용 침팬지는 자연상태의 침팬지와는 달리 인공적인 동물원에서 자란 개체이므로 종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등의 비판을 받게 된다. 이후 침팬지의 마음이론에 대해서는 찬반 실험이 벌어지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침팬지에게는 인간의 마음이론과 어렴풋하게도 비슷한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다.

이 책은 마음이론에 관한 책이다. 마음이론 하나를 인정할 때, 거기로부터 신이 나오고, 영혼이 나오고, 불멸이 나오고, 내세가 나오고, 불멸이 나오고, 운명이 나오고,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나온다. 게다가 도덕과 윤리까지도 나온다. 가히 인간판 만물의 이론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새로운 기준이 나왔다. 인간은 타자의 마음을 추론하는 존재다. 심지어 마음이 없는 곳에서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신은 적응적 환상(adoptive delusion)이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판단하고 처벌하는 존재로서의 신 관념을 마음이론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로 얻게된 우리의 선조들은 쾌락적, 충동적, 이기적 행동을 자제하게 됨으로써 그렇지 못한 개체들보다 사회적 추방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됨으로써 진화적으로 자연선택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겠다. 인생의 의미라는 개념을 채택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연선택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떤 측면에서 그럴까.

니체는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몸으로 증명한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토르 프랑클은 삶의 의미를 간직함으로써 자신이 아우슈비츠의 지옥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의 의미라는 개념을 채택한 개체의 진화적 생존가능성을 높인 대표적 사례일 수 있겠다. 약간은 다른 범주지만 기업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90년대 이후로 상당수 기업들이 이윤 추구를 넘어서는 가치를 기업 비전으로 표방한다. 아마도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이 나온 이후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윤의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라는 주장이 80년대까지 경영학 교과서에 버젓이 나왔는데, 이 책 이후로는 그 얘기가 쏙 들어간 것 같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 대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비전' 기업이 더 오래 생존할 뿐더러 주가상승률도 훨씬 높다는 실증적 증거를 제시하자, 기업들이 너도 나도 있지도 않은 비전을 마치 사기꾼이 자기집 가훈이 정직이라고 만들어내듯이 급조해냈던 것이다. (나중에 짐 콜린스가 꼽았던 비전 기업들도 하나둘씩 망하고, 주가도 원상 복귀했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다).

아무튼 제시 베링에 따르면 인생의 의미는 신과 더불어 인간의 마음이론이 실제 마음이 없는 곳까지 확대 적용되어 범주오류를 일으킴으로써 발생하게 된, 하지만 진화적 적응에는 도움이 된 환상일 뿐이다. 그런데 신 개념은 앞으로는 진화적 적응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기술의 발달로 전세계가 감시카메라, 위성사진, 인터넷 정보 확산망으로 뒤덮이고 CSI 식으로 과학수사가 벌어지는 세상에서는 굳이 만인을 지켜보고, 판단하고, 처벌하는 신 개념이 필요치 않다는 것. 신 없이 인간의 기술만으로 지켜보고, 판단하고, 처벌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는? 인생의 의미는 아직 나타난지 얼마 안 되는 (19세기 유럽에서 이제 막 출현한) 개념이므로 앞으로도 적응적 환상으로서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heBeliefInstinctThePsychologyofSouls,Destiny,andtheMeaningofLi
카테고리 인문/사회 > 명상
지은이 Bering, Jesse/ / (WWNorton&CoInc,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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