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목적과 결과 논증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추구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부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안 그러면 객관적 가치가 없는 주관적 관념론으로서의 행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배
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행복을 느낀다. 이 때 이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 것일까, 밥을 추구한 것일까?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은 행복이라기 보다는 밥이다. 최소한 1차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밥이 분명하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하여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밥을 먹은 결과로 행복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즉 행복을 추구한 결과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은 결과로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상위의 목적이 아니라 성취의 결과로서 수반되는 어떤 것일 수 있다.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어떠한 성취의 결과로서 행복이 수반된다는 것은 심리학자 빅터 프랑클도 지적한 바 있다. 프랑클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다른 것들을 모두 수단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행복이 최고의 목적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행복해야 하며 불행은 최대한 피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내용없는 행복이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행복 알약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알약을 먹으면 일정 시간 동안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우리는 엄청난 슬픔 속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껴서는 곤란하다. 빨리 행복 알약을 하나 먹어서 슬픔을 떨쳐버리고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 부모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슬퍼하지 않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행복을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부모가 죽었는데 행복하다니, 뭔가 내용과 형식 사이의 불일치가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어긋남이 발생한 것 같지 않은가?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예컨대 내 아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불구자가 되든, 내 사업이 망하든,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지든,
나라가 망하든, 지구가 멸망하든 사건의 내용과 무관하게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도구만 갖추게 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합리적인 일일까. 이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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