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의무>>를 읽다가 버트런드 러셀이 1910년대에 '우리 인생의 무한한 부분'이란 개념에 중점을 둔 '명상의
종교'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책은 예전에 한번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흘려 넘겼나본데, 다시 읽다보니 눈에 확 띈다.
러셀은 당시 불륜관계였던 여자 친구에게 '당신이 말하는 신이 내가 말하는 무한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과학에 모순되지 않는 종교로서의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명상'과도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젊은 시절 노트에 썼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인생의 의미, 즉 세계의 의미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신이니, 영성이니, 초월이니, 내세니 하는 중세적 세계관이 담긴 용어를 쓰지 않고도 종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정신적 활동으로서의 철학적 성찰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사례가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제자들을 만류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공장노동자가 되라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기술자나 의사가 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본인도 기회만 되면 철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교사나 수도원 정원사, 건축가, 전쟁 자원봉사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자신의 충고를 거부하고 교수가 되려하는 제자 노먼 말콤에게는 다음과 같이 경계하기도 했다:
"만약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그저 어떤 심오한 논리학의 문제들 등게 관해서 어느 정도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너의 생각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만약 그것이 너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위험한 말들을 사용하는 여느 기자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확실성, 확률, 지각 등에 관해서 잘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인생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진정으로 정직하게 생각하는 것, 또는 생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훨씬 더 어렵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를 평가하면서, "훌륭한 철학자는 진정한 인간이다"라는 식의 어찌보면 유가철학의 자기수양론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유교의 일일삼성, 하루 세번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도 크게 보면 철학적 명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것을 보면 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수입되어 풍미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그 정신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라기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이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논리실증주의적인 성격이 더 강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Ludwig Wittgenstein
- 저자
- Monk, Ray 지음
- 출판사
- Penguin Books | 1991-11-01 출간
- 카테고리
- 문학/만화
- 책소개
- Great philosophical biographies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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