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명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8.04 과학에 모순되지 않는 종교 2
  2. 2012.07.28 과학에 모순되지 않는 종교에 대하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의무>>를 읽다가 버트런드 러셀이 1910년대에 '우리 인생의 무한한 부분'이란 개념에 중점을 둔 '명상의 종교'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책은 예전에 한번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흘려 넘겼나본데, 다시 읽다보니 눈에 확 띈다.

러셀은 당시 불륜관계였던 여자 친구에게 '당신이 말하는 신이 내가 말하는 무한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과학에 모순되지 않는 종교로서의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명상'과도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젊은 시절 노트에 썼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인생의 의미, 즉 세계의 의미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신이니, 영성이니, 초월이니, 내세니 하는 중세적 세계관이 담긴 용어를 쓰지 않고도 종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정신적 활동으로서의 철학적 성찰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사례가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제자들을 만류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공장노동자가 되라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기술자나 의사가 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본인도 기회만 되면 철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교사나 수도원 정원사, 건축가, 전쟁 자원봉사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자신의 충고를 거부하고 교수가 되려하는 제자 노먼 말콤에게는 다음과 같이 경계하기도 했다:

"만약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그저 어떤 심오한 논리학의 문제들 등게 관해서 어느 정도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너의 생각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만약 그것이 너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위험한 말들을 사용하는 여느 기자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확실성, 확률, 지각 등에 관해서 잘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인생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진정으로 정직하게 생각하는 것, 또는 생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훨씬 더 어렵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를 평가하면서, "훌륭한 철학자는 진정한 인간이다"라는 식의 어찌보면 유가철학의 자기수양론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유교의 일일삼성, 하루 세번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도 크게 보면 철학적 명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것을 보면 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수입되어 풍미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그 정신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라기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이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논리실증주의적인 성격이 더 강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Ludwig Wittgenstein

저자
Monk, Ray 지음
출판사
Penguin Books | 1991-11-01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Great philosophical biographies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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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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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제도권 종교는 없다. 누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돈을 받아챙기는 사람이 있다 하자. 그 사람을 사기죄로 고발한다면 100%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신성한' 법정에서 부활이라는 헛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에 와서 종교는 마치 민주주의 시대의 왕의 위상처럼 어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전통 문화니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으니까 그냥 봐주는 측면이 강하다. 조상이 와서 진짜로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빠트리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교라고 해서 양자역학과 맞아 떨어지느니 어쩌니 하지만 윤회를 비롯한 불교 교리의 상당 부분도 현대 과학과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종교가 가능할까? 아마도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도 창시되는 시점에서는 당대의 과학지식과 크게 모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니까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나,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수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은 21세기의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종교가 창시되어야 할 시점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주의적 지식인을 위한 종교의 후보로는 무엇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많은 이들이 수행하는 명상이야말로 과학지식과 모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궁극적 진리를 깨닫는다거나 우주와 합일한다는 주장은 별로 과학지식과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한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어떨까? 철학의 방법론은 논리와 실증과 직관이다. 무한에 대해 철학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은 무언가 약간은 종교적인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니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어떨까. 어쩌면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 21세기에 걸맞는 종교의 형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의미는 과학적 지식과 모순되기는커녕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과학 등 과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만 올바로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는 반드시 초월적 대상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무한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종교는 아니지만 뭔가 종교적인 뉘앙스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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