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절대적 진리, 데카르트가 말하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진리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게 있다해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절대적인 집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가?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궁극적이며, 영원불변하며,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쾰른 대성당이나 기타 등등의 최고의 건축물보다 미학적으로 월등히 우월한 어떤 집을 말하는가? 그렇다고 치자. 절대적으로 또한 궁극적으로 완전하며, 영원불변한 집이 있다고 하자. 이 집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그런 집은 영원불변하지 못하므로 궁극의 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산다는 1조원짜리 집도, 빌게이츠가 만든 시애틀의 최첨단 초호화 맨션도, 아니 지구 위에 지금까지 존재했고 앞으로 인류가 만들 어떠한 집도 궁극의 집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완전한 집을 추구하는 건축가가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집에 살려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사는 집을 말하는가. 절대적인 집의 이데아를 말하는가.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궁극적인 집은 몇 개나 있을 수 있는가. 아니 도대체 왜 절대적인 집이라는 단어를 두고 '우리'가 고민하고 논쟁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일까?
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존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절대적이지 않고 궁극적이지도 않으며 영원불변하지도 않다.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동물들이 사는 곳도 절대적이지 않고 궁극적이지도 않으며 영원불변하지도 않다. 집을 필요로 하는 주체와 집이 세워져야할 장소 모두 절대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이며 영원불별한 집이 요구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인 엄마, 절대적인 발가락, 절대적인 똥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이상해 보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집이 문학적 수사법이 아니라 진지한 추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어딘가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단어들의 취할 수 있는 가능한 조합들 가운데 다소 특이한 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실체가 있는 진지한 추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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