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철학과에서 당연히 인생의 의미를 다룰 거라는 통념이 있다. 그리고 막상 철학과에서 이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얘길 들으면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사를 훑어보면 전통적으로 철학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다룬 적이 없었다. 탈레스가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따져본 이래로, 플라톤에서 데카르트를 거쳐 칸트에 이르기까지 존재란 무엇인지, 최고선이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를 다루었지 결코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가 떠오른 적이 없었다. 적어도 19세기 이전의 철학에서는 말이다.
따라서 철학이 인생의 의미를 다루지 않는다는 걸 꼭 구체적 삶에서 멀어진 아카데미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되지 못한다. 철학사에서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에서 처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라는 말 자체가 19세기에야 만들어진 용어다. '세계의 의미'라는 말을 18세기 독일 시인 노발리스가 처음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인생의 의미라는 용어를 누가 최초로 썼는지는 명확치 않다. 니체와 톨스토이가 1870년대에 쓴 것은 확인된다. 생철학자 쇼펜하우어나 실존주의의 선구자인 키르케고르도 인생의 의미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인생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는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이란 말을 썼다고 해서 인생의 의미를 다룬 것은 아니다. 의미는 목적을 포함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스쳐 지나가듯 다루어진 주제다. 20세기 분석 철학에서는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는 형이상학, 신학 등과 싸잡아져서 배격되다가 80년대 이후에야 겨우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주로 언급되는 텍스트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톨스토이의 <고백록>, 또는 니체와 빅토르 프랑클처럼 철학보다는 문학과 심리학 쪽에 걸쳐진 문헌들이 많이 포함된다.
인도철학과 중국철학에서도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는 다루어진 적이 없다.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의미라는 질문은 '신의 죽음'과 과학적 세계관(특히 기계적 유물론)의 대두라는 조건이 선행되어야만 던져질 수 있는데, 전통적인 동양철학에서는 둘 모두가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동양사회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서양 문명 및 사상의 수입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정리하자면 철학이 인생의 의미를 다룰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일반인들이 사르트르와 카뮈로 대표되는 문학적 실존주의를 통해 철학을 주로 접했던 20세기적 조건에서 비롯된 면이 크며, 철학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에 포함되지 않은 매우 새로운 현대적 주제라는 점이다. 또한 동양사회에서 삶의 의미라는 문제는 기독교와 뉴턴 물리학 및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서양 종교 및 과학 사상 등이 수입되면서 함께 들어온 외국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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