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식은 무를 인식하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다 한다. 왜냐하면 무를 인식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생존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존재하는 것이 나에게 해가 되고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해도 아니고 이익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아까운 뇌 자원을 없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우리는 자신의 죽음 이후 무화(無化)된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우리가 죽음을 결코 체험할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몸으로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기껏 죽음이 심연이며, 블랙홀이고, 경험의 종말이며 영원한 무, 존재의 영구적 소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단지 무의 물화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 이론은 죽음 이후 우리의 육체를 떠난 마음이 이 세상이 아닌 어떤 다른 공간에 (그것이 천국이든 암흑 속의 공간이든)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세에서 불멸하는 영혼이라는 환상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내세에 대한 믿음은 종교에서 비롯되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마음이론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우리 마음이론은 죽은 이후를 사유하는 데 적합치 않을뿐더러 완전히 실패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은 의식을 부재를 의식적으로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테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멸해 대한 증명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고,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에서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다"고 말했으며, 영국 시인 존 게이는 1732년 자신의 묘비명에 "인생은 장난이다. 모든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나는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알고 있다."라고 썼던 것이다.

-제시 베링, <종교 본능>


우리는 절대 자신의 죽음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자신의 죽음을 실질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오직 타인의 죽음만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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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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