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아들래미가 울부짖고 물병 던지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미개한 국민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먼저 세월호 유가족들 전부가 울부짖고 물병을 던지지는 않았을 건 분명하고, 유족 가운데 몇 명이 울부짖고 물병을 던져야 그들을 싸잡아서 미개하다고 부를 수 있는지 같은 테크니컬한 문제는 따지지 않기로 하자. 실종 학생들의 부모들은 안산 지역 주민들인데, 안산하면 딱 떠오르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유가족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분들은 아닐 것이고, 대체로 사회적으로 힘 없고 가난한 층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계층의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자식들의 생사안위가 걱정되어 배에 태워달라는 요청하는 것을 해경들이 거부하였고, 결국 사비를 들여 사고 해역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가족들의 승선을 거부한 해경이 구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국회의원은 배에 태워줬다 한다. 유족들이 울부짖고 물병 던지는 행동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사회적 약자인 저들이 울부짖지 않고 점잖게 요구한다고 해서 일이 풀리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안산에 사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해경들은 이 가난하고 절박한 약자들의 요구를 귀담아 들을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몽준이 아들래미가 그 배에 탔다고 해보자. 정몽준이라면 울부짖고 물병 던질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정몽준이가 평소 욱하는 성질이 있다 하니 다짜고짜 쌍욕을 하고 덤벼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정몽준이 정도라면 해수부장관이나 해경 청장에게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전화하기도 전에 해수부장관과 해경청장이 알아서 아랫것들에게 잘 챙겨달라고 압력성 전화를 때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몽준이 아들래미는 울부짖고 물병던지는 세월호 주민들이 미개하다며 그 이유를 그들의 미개성이라는 개인적 또는 계급적 품성에 귀인시켰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힘과 지위에 따라 응대가 달라지는 정부 관리들과 해경들의 처신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점잖게 요구하는 것을 공무원과 해경 나리들께서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유족들이 울부짖고 물병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짱돌 들고 횃불을 들어도 들어줄까 말까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니 말이다.


따라서 누군가 울부짖는다면 그것은 울부짖는 것이 그 사람의 성품이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동어반복적이고 하나마나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로 유의미한 판단은 그 사람이 울부짖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어떤 구조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의 거친 의사소통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예전에 조현오가 천안함 유족들이 돼지처럼 울부짖는다고 말했지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수용되는 사회라면 돼지처럼 울부짖지 않아도 될 수 있었을 것이며, 희생자들이 가난하게 억울하게 고생하며 살다가 죽었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저렇게 서럽게 몸부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TV에 종종 보이는 미국 시민들처럼 조용히 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것은 그들의 삶이 한이 많고 억울한 게 많았다는 사실의 결과이지, 객관적 상황과 무관한 품성 탓이 아니다. 물은 온도가 올라가면 끓는 것이고, 온도가 내려가면 어는 것이지, 물 자체가 애초부터 끓는 물과 어는 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게 힘들고 억울하고, 억울하게 죽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울부짖고 몸무림치고 물병을 던지는 것일 뿐이다. 정몽준이도 재벌 2세가 아니라 가난한 집안에서 억울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아들래미가 죽었을 때 미개하게 울부짖고 물병을 던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다. 이건희가 죽었는데, 이재용이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고 옷을 찢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로테스크 하지 않은가. 누릴만큼 누리고 죽었는데 뭐가 억울하다고 그러고 앉아있겠느냐는 말이다.

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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