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에 대한 부조리감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 같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쓴 전쟁소설의 주인공이 느끼는 부조리감과 유사한 면이 있다. 말단 병사 개인의 눈으로 볼 때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자신과는 원수진 일이 없는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하는지, 왜 죽을 것이 뻔한 고지를 향한 진격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가 부조리하게 나타난다. 전쟁의 부조리함이 어쩌구저쩌구 운운하는 책들은 대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전쟁을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이 발발하게 된 여러 원인들과 그에 개입된 다양한 의도들을 파헤치고 엮어냄으로써 전쟁의 의미를 밝혀낸다. 물론 그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 야망 따위의 개인적 수준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 지역 단위의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한 상위 수준의 체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상위 체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 전쟁이 개인들에게 가하는 잔혹한 운명만이 부각되면서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삶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삶을 둘러싸고 영향을 미치는 더 높은 수준의 상위 체계가 어떻게 나의 삶과 연결되는지를 보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전쟁의 의미가 개인적 수준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없듯이, 삶의 의미는 개인적 삶의 내부적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며, 상위 체계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와 생태계와 존재계 등의 상위 체계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때, 개인들이 짊어져야 하는 인생의 불가해한 운명과 고통만이 부각되면서 삶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즉, 의미는 상위 체계와의 연결과 맥락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러한 맥락을 찾지 못할 때 부조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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