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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1 반항자와 순응자

전두환이 아직도 육사생도의 사열을 받는다는 뉴스를 보니 80년 광주항쟁이 생각난다. 80년 당시 공수부대원이나 장교 가운데서 민간인 학살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에 불복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제풀에 눈이 뒤집혀서 개천에서 미역감다가 손을 흔드는 14세 소년까지 사살한 쓰레기 같은 부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시위대가 빨갱이, 폭도라는 선동에 세뇌당해서? 전우가 시위대의 짱돌에 부상당하고 버스에 치여 죽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먹고 살자니 부당한 명령이라도 따르고봐야 할 것 같아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명령에 순응하는 사람도 있고, 반항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순응하는 사람이 더 많고 반항하는 사람은 적다. 심지어 부당한 명령이라도 반항하는 사람보다는 순응하는 사람이 더 많다. 만일 어떤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반항자라면 그 조직은 당장 무너질 것이다. 반면 구성원 모두가 순응자라면 조직은 변화의 동력이 없으므로 오래 못가서 환경에 부적응하여 무너질 것이다. 결론은 대부분이 순응자이면서 일부분이 반항자인, 현재 우리가 보는 구성원 비율이 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 조직으로서의 안정성을 가지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굳이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진화론적 가설만 도입하면 쉽게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인데, 스탠리 밀그램이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봐야겠다는 자세로 실험한 결과도 결론은 동일했다.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과반수의 피실험자들이 대학교수의 권위에 복종하여 학문 연구라는 별로 거창하지도 않은 미명 하에 무고한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전기고문을 가했던 것이다.

무고한 사람에 대한 전기고문 같은 부당한 명령이라도 65% 정도(?)는 절대복종한다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결과는 안타깝지만 인류가 집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도달한 어떤 유전적 균형일 것이다. 이 때문에 독재자들의 학살극에 절대 다수가 동조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부당한 명령에 아무도 복종하지 않는 사회라면, 도덕적으로야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회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독재가 나타나기 이전에 그 불복종의 원심력으로 인하여 이미 멸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두환이나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심리구조적 약점을 파고들면서 역사의 무대에 반복해서 머리를 들이민다. 전쟁, 학살, 고문과 같은 역사상 흔히 나타나는 잔악행위나 우리나라의 인혁당 사건, 조봉암 사건 같은 사법살인 등의 뿌리에는 동일하게 권위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조건적 복종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진화론적 생존의 조건으로 인간 대다수가 '복종 본능'을 가진다는 사실이 지금 현재에도 과거와 동일한 진화적 생존가치를 가지는 것인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인류가 80명 수준의 밴드 소사이어티 같은 소집단 단위라거나,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던 전근대적 사회가 아닌 상황에서 한 집단으로부터의 추방(명령불복종자에 대한 집단의 처벌로서)이 과거와 같은 수준의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사회경제적으로도 내부고발자나 명령불복종자들은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나꼼수에 나경원 남편(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건을 제보한 어떤 여검사처럼 은밀히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부고발에 대해 포상금을 지불하는 정책이 나타난 것에서 보듯 내부고발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압력도 높아지는 추세다. 또한 손해를 무릎쓰고 양심에 따라 불복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의 진화적 생존 가치는 아직까지는 막강하지만 점점 더 과거와 같은 위력은 가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권위에 대한 복종

저자
스탠리 밀그램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09-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당신의 도덕적 신념에 반하는 명령을 내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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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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