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6.19 인생의 부조리, 아이러니

카뮈가 인생의 부조리를 말한다면, 네이글은 아이러니를 말한다. 부조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카뮈와 달리 네이글은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받아 넘긴다. 네이글의 아이러니와 관련하여 Feinberg가 쓴 글이 매우 인상적이다. <<굿바이 카뮈>>에 넣으려고 했다가 딱 맞는 곳을 못찾아 뺀 글이다. 개정판을 쓸 일이 있으면 다듬어서 넣었으면 한다:

======================

Feinberg는 1차 세계대전에 관한 BBC의 27부작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물론 영국인의 입장에서)을 소개하는 것으로 아이러니의 실제 사례를 제시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일단의 영국군 부대가 적진을 향해 행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청자인 우리는 그 군인들이 총알받이로서 자신들의 전멸을 향해 행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발은 오랜 시간의 행군으로 지쳐있고, 몸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흙 범벅 속에서 그들은  행군한다. 그들이 행진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라마르세예즈’니 ‘영국이여 지배하라’처럼 사기를 올려주는 애국가가 아니다. ‘Over there’같은 힘찬 군가도 아니다. ‘춤추는 마틸다’ 같은 즐겁게 술마실 때 부르는 노래도 아니고, 감상적인 발라드도, 슬픈 찬송가도, 장송곡도 아니다. 그 대신 그들은 올드랭자인의 심금을 울리는 곡조에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개사한 그 유명한 넌센스 노래("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네....")를 부른다:

We’re here because we’re here
Because we’re here because we’re here;
We’re here because we’re here
Because we’re here because we’re here…

다큐멘터리를 보던 시청자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핑 괴이는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시청자는 가사의 부조리함을 눈치채고는 무엇이 이 광경을 슬프게 만든 것인지를 따져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예민한 시청자라면 죽음의 콘베이어벨트를 통과하는 저 군인들의 부조리한 노래가 얼마나 정확히 그들의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것인지를 알아차리고는, 스스로 조용하고 슬픈 쾌감을 느끼게 된다.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저 군인들은 불가피하게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다. 오직 자기가 처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물러서지 않는 수용을 통해 스스로를 부조리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 이 군인들의 광경 속에는 무언가 인생을 고귀하게 만드는 영감이 있다.




굿바이 카뮈

저자
이윤 지음
출판사
필로소픽 | 2012-0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생에 대한 물음과 작별하라!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
가격비교


Posted by 깊은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