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을 직접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오래된 철학의 난제다. "the problem of other mind"라고 고유명칭까지 붙어 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첫사랑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해서 애태우다가 오해 속에서 헤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청년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소심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친구와 키스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자기를 정말로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원초적 한계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여자 친구의 생일에 둘만의 여행을 함께 하고, 첫눈이 오는 날에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함께 들은 CD를 선물로 주고 받는 이 모든 여자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애태운다. 타인의 마음을 검증할 수 없다는 철학적 난제가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바로 연애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에 나오는 가사처럼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수만 있다면" 남자주인공의 고민이 말끔히 해소될 수 있었을까?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사랑의 고민과 더불어 사랑이라는 감정의 설레이는 매력도 함께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이 우주에 없다. 철학적으로 볼 때, 타인의 마음은 접근불가능한 물자체(Ding an sich)다. 자신의 모습을 맨얼굴로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여자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액션을 취하겠다는 남자주인공의 소심한 전략으로는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도대체 왜 100%의 확실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미리 사랑을 확인하고 검증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남자주인공이 여자에게 "너 나 사랑하니?"라고 물어서 "그래"라고 대답을 들으면 사랑이 확인되는 것인가? 그 대답이 참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보장하는가? 또한 "사랑하지 않아"라는 대답을 했다면,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증되는 것인가?

영화에서 볼 때 여자는 가난한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긴 하지만, 강남에 사는 부잣집 선배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말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도 부분적으로만 참이고, 부분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다. 어쩌면 여자 주인공 자신에게도 자기의 마음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남자주인공과 부잣집 선배 가운데 둘 중에 누가 더 좋은지를 여자 스스로도 판단하기 힘들다면, 자기의 마음을 자기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를 스스로도 명확히 규정하기도 힘들 수 있는데, 타인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에 액션을 취하겠다는 남자주인공의 생각은 한참 모자란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한 사랑과 속물적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복잡한 마음 전체가 사태의 참모습이다. 갈등하는 생각들이 혼재하는 것이 마음의 본래 모습이다. 그런데 영화 속 남자주인공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저울재기는 '쌍년' 같은 생각이다. 속물적 욕망이 배제된 순수한 사랑 같은 단일한 실체는 현실에 없음에도 남자주인공은 그런 것이 있다고 착각하고 찾아헤매는 듯하다. 이것이 첫번째 오류다.

두번째, 남자주인공의 실패는 타인의 마음이라는 객관적 실체(또는 진리)를 알기 전에는 행동을 개시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세상은 모든 것을 알기 전에는 행동을 개시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자의 마음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연동하여 나의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자세가 첫사랑의 실패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로 칼로 무자르듯 구분되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객관적 실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주체적 행동에 의한 둘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자의 마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훈이 객관적 진리를 확인하겠다는 태도로 관찰자의 자세로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했다면 그가 확인하고자 했던 객관적 진리(여자의 마음)는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자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나의 행위와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나의 행동에 따라 좌우되는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연애에서 회의주의자의 전략을 취해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발견하는 사태는 객관적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은 관조적 관찰로 검증되지도 해결되지도 않는다. 나의 행동에 따른 상대의 반응으로만 타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추론할 수 있다. 타인의 마음을 손 안대고 확인하려는 무용한 시도가 첫사랑을 망쳤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자주인공의 두 가지 오류는: 모순되는 생각들의 총체로서의 마음의 구조를 알지 못했던 것. 그리고 여자의 마음을 관조적 관찰의 대상으로 착각했던 것. 타인의 마음이 모순되는 생각들의 혼합체임을 인식하고, 소극적으로 지켜보기 보다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속 여자 주인공이 사랑과 조건 사이에서 흔들리긴 했어도 100% 속물(=썅년)은 아니었으니까.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서 말하면, 타인의 마음은 부딪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부딪쳐본다 하더라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를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몇가지의 단편적 단서만으로 타인의 마음을 다 안 것처럼 성급히 결론 내리려는 첫사랑의 남녀들에게 건축학개론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다룬 철학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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