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는 책인 듯하다. 특히 저자 짐 홀트가 과학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라는 점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케이스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 난해한 철학적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를 통해 글을 썼을 때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저자가 인터뷰 상대를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타협하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인터뷰 또한 대상자를 여러 차례 만나서 심도있게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학계의 유명인사를 반나절 만나서 차 한잔 또는 밥 한끼 같이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데 더 의미를 두지 않았나 싶다. 아마존 서평을 보니 '유명인사 아는 체 하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이 책의 또다른 약점은 초반이 어수선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것저것 찔끔거리고 있어서 40-50페이지는 넘겨야 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번역 또한 전문성이 결여된 것이 눈에 확 뜨여서 책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 과학용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철학 용어에서는 1장에서부터 Substance를 '실체'가 아니라 '본질'로, extended substance는 '연장적 실체'가 업계용어인데 '확장된 본질'로 번역한 걸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우연'에 대비되는 개념은 필연'인데, 이를 '필요'로 번역하기도 하고, 'To be is to be the value of a variable은 '존재한다는 것은 변항의 값이 된다는 것이다'가 적절한데,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로 풀이하는 등 역자가 문구를 따라가면서 해석하는 데 급급하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 출판사를 보니 경제경영서를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다. 무려 25000원짜리 책을 내면서 편집자가 보완하지 못할 거라면 감수라도 붙였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참신한 얘기는 데릭 파핏과 존 레슬리의 주장을 다룬 부분이다. 나머지들은 여러군데서 이미 접해본 얘기들인데, 짐 홀트가 새로운 해석을 덧붙였다든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기가막히게 잘 요약, 설명했다든가 하는 부가가치는 없다고 본다.
'책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틀리의 비트겐슈타인 (0) | 2013.09.29 |
---|---|
마흐, 대처, 경험론 (0) | 2013.08.21 |
김대식 교수의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2 (0) | 2013.04.17 |
김대식 교수의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1 (0) | 2013.04.05 |
깊이에의 강요, 의미에의 강요 (0) | 201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