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가 천하를 위해 터럭 하나도 뽑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통은 이기주의로 해석한다.
그런데 만일 양주가 천하를 위해서는 터럭 하나도 뽑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터럭이 아니라 목이라도 바칠 수 있다 한다면 이것은 논리적 모순일까?
천하를 단지 나가 아닌 타자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논리적 모순이 된다. 자식도 나가 아닌 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하를 추상적인 것으로 본다면 모순이 아니다. 이 때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대립한다. 즉 추상적인 천하 대 구체적인 나의 터럭, 구체적인 나의 자식이다. 추상적인 것을 위해 구체적인 것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천하를 위해 터럭 하나도 뽑지 않겠다는 양주가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겠다고 해도 논리적 모순은 아니다. 추상적인 것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것을 희생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구체적인 것을 위해서는 덜 중요한 구체적인 것을 희생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구체적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추상적 명분을 위한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는 뭔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구체적 인간들을 숱하게 죽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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