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다세계

짧은 생각 2013. 11. 6. 04:19

"우리의 우주가 가장 대칭적인 상태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 전체는 진공이었다. 그 후에 나타난 두 번째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대칭성이 아주 조금 붕괴되어 있으면서 에너지가 더 낮은 상태이다. 우주가 두 번째 상태로 접어들면 물질-반물질의 대칭성이 우주 전역에 걸쳐 빠르게 붕괴되고, 이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창조의 순간에 입자로 변형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빅뱅’이라 부른다. … 그러므로 “우주는 왜 텅 비어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무(無)는 그 자체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로부터의 세계>>


논리적으로 볼 때 무가 하나의 세계이고, 그것이 아주 불안정하여 매우 짧은 시간(?)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면(이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무의 세계는 무시간적이므로 절대시간의 관념으로 볼 때-물론 절대시간이 적용될 수 없지만 생각을 돕는 차원에서-1초든 1조년이든 영원이든 마찬가지로 전혀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시간 자체를 미분하여 하나의 세계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모든 공간의 특정한 시간을 하나의 독립적 세계로 보는 것이다. 세계를 사실들의 총체라고 할 때 특정 시간의 모든 사건을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순간의 자아를 상이한 것으로 간주하는 무아의 방식과 유사하게.)


노직의 다산이론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선가' 가능하고, 우리 우주와는 다른 평행우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문단의 논리대로 생각해보면 무의 세계는 다른 '곳'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존재할 수 있다(다른 '시간들'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 우주의 다른 시간과 다른 우주의 다른 시간에서도 무가 가능하므로).


그리고 무의 세계(=무라는 사건)를 해석한 결과는 똑같다. "무의 세계는 하나의 방식으로만 가능하고 유의 세계는 여러 방식으로 가능하므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다"고 표현할 때, 이것은 무라는 사건을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무의 세계는 불안정하지 때문에 짧은 시간(?)만 존재하다가 물질이 존재하는 다양한 상태들로 전환된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라는 사건을 시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무의 세계는 하나이고, 유의 세계는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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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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