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몇이 나올까를 맞히는 게임이라고 하자.
나는 답을 아는가?
내가 1이라고 찍었는데 2가 나오면 나는 틀린 것이다.
내가 어떤 숫자를 찍었는데 그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이다.
하지만 내가 1이라고 찍었는데 1이 나왔다 하더라도 나는 답을 안 것은 아니다.
맞을 확률 1/6에 당첨된 것이지 답을 알고 있던 게 아니다.
즉, 숫자를 맞혔든 틀렸든 어느 경우에도 나는 답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1에서 6사이에 하나가 나온다고 말하면?
나는 무조건 맞다.
나는 확실히 답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게 맞긴 한데 맹탕이다.
경험해서 아는 게 아니라 선험적으로 안다.
이렇게 아는 게 뭐에 쓸모가 있지?
수학에서는 쓸모가 있겠지만, 도박 판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답은 있는가?
이 질문도 주사위 놀음과 비슷하게 비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경우에 그에 해당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답이 있다.
이 가운데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주사위 놀음에서 하나를 찍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행복을 선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신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주사위 게임의 전모를 알고 있듯이 인생의 의미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들의 총체이다.
인생의 의미라는 주사위의 면에는 돈, 사랑, 행복, 신, 명예, 성취 또는 허무 등등의 숫자가 있다.
개인은 이 가운데 몇 개의 것들을 선택한다. 중복 가능하게.
심지어 던지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자살)
(내가 논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라고 했는데 빼먹은 게 있을 수 있다.
주사위를 던졌는데 1-6사이가 안나오고 모서리로 서는 경우이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을 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 말은 인식에 대한 이야기인가?
나는 내가 원하는 숫자가 나오도록 주사위를 던질 수 없다, 가 맞는 말이다.
이것은 인식이 아니라 실행이다.
이것은 내가 사건을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이지 순수한 인식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의미도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문제일 수 있다.
나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가 아니라
나는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없다, 라는 뜻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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