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음에 대한 철학적 논증이 꽤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주장이 마치 자명한 공리처럼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를 보니, "우리가 다 행복하려고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마치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는 투로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 아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주장은 별 근거가 없다. 이 세계가 웃긴 것이, 보겠다는 사람에게는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속성이 있어서 '어, 어'하는 사이에 쉽게 속아넘어 가게 된다.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논증을 시도해보자.
1. 목적과 수단, 전체와 부분 논증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자. 목적은 수단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인생은 행복의 수단이 된다.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익히 들어온 말이라서 별로 이상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 행복의 수단이라는 주장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인생이란 우리 삶의 전체인데 반해, 행복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느끼는,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긍정적 감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긍정적 감정에는 행복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앤드루 커노한이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다>>에서 말한 것처럼,
행복은 수많은 강렬한 정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행복은 감사, 즐거움, 유쾌함보다는 더 강렬한 반면 의기양양, 기쁨, 환희, 희열, 지복, 황홀, 도취보다는 약한 정서다. 행복이 하나의 정서에 불과하다면 이런 정서를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인생의 올바를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유사한 정서 중 환희나 희열 같은 더 강렬한 정서를 추구하면 안 된단 말인가?
앤드루 커노한,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다>>, p. 260
즉 행복은 인생의 여러 체험 가운데 하나인 정서 체험이며, 정서 체험 가운데 하나인 긍정적 정서체험이며, 긍정적 정서체험 가운데 상대적으로 온건한 하나의 체험일 뿐이다. 인생이 전체라면, 행복은 부분이다. 아니 부분의 부분의 부분이다. 따라서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주장은 부분이 전체의 목적이라는 말과 같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목적은 이명박이다"라든가 "내 인생의 목적은 나의 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류다.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추구했을 때 나타날 결과는, 지난 4년간 마치 이명박 일당이 대한민국 전체의 목적인 것처럼 정치했을 때 나타난 결과와 유사할 수 있다.
2. 목적과 결과 논증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추구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부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안 그러면 객관적 가치가 없는 주관적 관념론으로서의 행복으로 전락한다.(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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