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알지도못하면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11.03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 1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어떤 홍상수 영화에서 한 영화학도가 선배에게 묻는다. (제목을 찾아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선배는 난처해하며 생각하다가 자유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참 술마시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질문할 때에는 또 다른 걸 말한다. 그러자 앞서 질문했던 후배가 아까는 자유라고 하더니라고 따진다.


본질이 없다면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이 없다면 어떤 하나의 속성이 창작이라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작이라는 개념은 어떤 한 사람이 독재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그 개념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에서 복수의 참여자들이 관여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라든지, 주제라든지, 아이디어라든지, 독창성이라든지 등등 창작에 연관된 복수의 하위 요소들을 그 개념 속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복수성은 창작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그래서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설픈 것이다.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객관적으로 묻는 것인지, 아니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주관적으로 묻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실은 질문하는 사람도 자기가 무엇을 묻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질문이다. 도대체 말할 수 있는 것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말하지 말고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이 마이트너를 인용한 문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례다.


본질이 없다면 어떤 개념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없다. 중요한 요소들 여러 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만 꼭 찍어내 중요한 것을 제시하라는 요구 자체는 인간이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경쟁적인 이유에서든 최고의 것 하나만을 꼽으려는 이상한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외에는 별 가치가 없는 접근법이다. 영화에서 선배가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 한번은 자유라고 했다가, 또 다른 경우에는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실은 의식하지 못한 채 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념이 품고 있는 의미의 복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등의 단 하나의 본질을 묻는 듯한 질문한다면 그에 대한 답을 찾는데 급급하기보다는 그 질문이 제기된 바탕에 깔려 있는 숨은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일이 상대방의 기분은 나쁘겠지만 올바른 대답일 것이다.

'짧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세우스의 배와 언어의 규칙  (0) 2018.03.01
양주와 이기주의  (0) 2014.09.29
시스템과 개인  (0) 2014.05.07
삶의 의미를 묻는 두 가지 다른 이유  (0) 2013.11.08
시간과 다세계  (0) 2013.11.06
Posted by 깊은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