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아이디어를 삶의 의미 문제에 적용해보자.
생산력이 발전하여 현재의 생산관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가 혁명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이때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질곡으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의식의 생산력이 발전하여 우리 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발생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문제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삶만으로 인간의 자의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때 자의식은 인간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트랜스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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