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파스칼 때부터 이미 우주와 삶의 의미를 연결시키는 착상의 싹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착상은 보통 허무주의적 감정으로 귀결되는 경향을 띤다.
이 때의 우주는 무한, 영원, 침묵, 어둠, 차가움으로 표현되는,
카뮈식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무관심한 낯설고 적대적인 타자의 느낌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기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고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서, 우리 우주를 넘어 다중우주에까지 가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향을 보일까.
그것은 우리가 쉽게 빠지는 근본주의적, 환원주의적 성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즉 세상의 근원을 원자에서 찾는 것과 비슷한 성향이 삶의 의미를 우주에서 찾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것을 추구할 때 보이는 환원주의적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왜 삶의 의미를 원자에서 찾지 않고 우주에서 찾는 것일까.
재미있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노직이 말한대로 의미가 자신보다 큰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의 의미는 나 삶보다 작은 어떤 것이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에서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 삶의 의미는 나의 발가락이라고 하면 우습다. 최소한 나의 가족 정도는 되어야 들어줄 만하다.
따라서 의미 찾기는 자신보다 작은 것을 찾아가는 원자를 향한 환원주의가 아니라
자신보다 큰 것을 추구하는 자연스런 생각의 흐름 속에서 우주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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