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카뮈>> 마지막 부분에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쓴 부분이 미진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100세를 맞아 단식으로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 스콧 니어링으로 마무리를 했었는데, 개정판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을 넣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완전함을 추구한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20대에 인생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한 사람이니까...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태어나 1951년 4월 29일 전립선암으로 죽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직후인 1949년 12월 제자인 노먼 맬컴(Norman Malcom)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노먼에게 ,
편지 잘 받았다! 의사가 진단을 내렸는데 내가 전립선암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실제보다 나쁘게 들린다. 왜냐하면 병의 증상을 완화하는 약(실제로는 일종의 호르몬)이 있어서, 몇 년 동안 더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심지어 내게 다시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암에 대한 대응법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원은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모두가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고, 아주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바보도 아닌 의사를 만났거든. 종종 너와 리(Lee)를 감사의 마음으로 생각한다. 도니와 리에게 안부 전해다오.
너의 다정한
루트비히
-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노먼 맬컴
죽음학 연구자인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의사로부터 불치병을 통보받은 사람들의 통상적인 최초의 반응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뭐라고?! 내가 죽는다고? 내가 죽는다니, 그럴 리가...그럴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대충 이런 반응이다. 멜로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그런 장면....
당연하게도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일반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소크라테스처럼 비트겐슈타인도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삶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살려고 바둥거리는 철학자를 누가 존경하겠는가.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마치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나오는 괴테가 그랬던 것처럼, 철학사에 '불멸'의 인상을 남기고 싶은 숨은 의도를 가지고 죽음에 초연한 척 일종의 "쇼"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죽음에 대해 초연한 이런 특징은 젊은 시절부터 자주, 일관되게 나타났다. 비트겐슈타인이 24살 때인 1913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2년여에 걸쳐 암을 앓았다) 이때 그는 러셀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115쪽
젊은 시절부터 '죽음=슬픔'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관념은 그가 청년시절 끊임 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렸다는 사실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어 보인다.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죽음이 슬픔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프지 않으니까 자살해도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죽는 게 나쁜 건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천재가 아닌 삶이 자신에게 무의미하므로 그 결과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죽음에 대한 다소 낭만적이고 치기어린 생각으로 군대에 입대하기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대전 당시 탈장 때문에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했는데, 입대 후 계속해서 전방 투입을 요구했다. 심지어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재벌이던 집안의 빽까지 써가면서 전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군당국은 그것을 거꾸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170쪽
그는 1차대전 중 가지고 다니던 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인생, 즉 나쁜 인생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상징이다.
이런 언급은 아직 인생 초탈 단계의 언어는 아니다. 의식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단계에서의 언어다. 그는 청년시절 전쟁터에서 실제로 죽음을 무릅쓰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했고, 그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었다.
이런 환경에서 ‘철학적 나’, 즉 도덕적 가치들의 담지자인 자아의 동일성에 관한 질문이 특별히 강렬해졌다. 카르파티아 산맥을 따라 퇴각하는 중에 비트겐슈타인은 아마도 처음으로 그 자아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직 살아남으려는 본능적, 동물적 의지에 의해 사로잡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즉 그는 도덕적 가치들이 불필요한 상태를 경험했다.
"어제 사격을 당했다. 무서웠다! 죽을까 봐 두려웠다. 그처럼 현재의 나는 살려는 욕망이 강하다. 생명을 즐기고 있을 때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죄’, 즉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 인생에 대한 그릇된 견해의 본성이다. 때때로 나는 동물이 된다. 그때는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무섭다! 그때 나는 또 동물처럼—내적인 구원의 가능성 없이—고통을 겪는다. 그때 나는 욕망과 혐오의 지배를 받는다. 그때 진정한 인생은 생각할 수 없다."
다음 3주 동안 그의 일기는 죄의 생활로 빠지려고 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그는 8월 12일 자신에게 말했다. “왜 너는 그것을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너는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쁜 인생은 비합리적인 인생이다.” 그는 자신의 약한 본성과의 투쟁을 위해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신에게 기도했다.
이러한 자기 훈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 이 작전 내내 주목할 만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브루실로프 공격이 거행되던 처음 며칠 동안 그는 대피하라는 명령을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리를 지켜 용감성을 인정하는 훈장에 추천되었다. “이런 비범한 행동으로 그는 동료들을 아주 침착하게 만들었다”고 보고되었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222-223쪽
죽음에 대한 분투가 그의 삶의 방향을 뒤바꾼 건 확실해 보인다. 전쟁 전에 아버지의 돈을 펑펑 써가며 귀족적인 사치를 즐기던 그는 전후에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비가역적으로' 던져버리고 금욕주의로 전환한다. 비트겐슈타인이 1차대전 포로수용소에서 <<논고>>를 탈고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을 선언하고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데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게 아닌가 추정해볼 수 있다.
그는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된다고 썼다. 인생의 의미에 해당하는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를 발견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화두가 타파되듯 문제가 더이상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방식으로 소멸하는 것이라는 철학적 통찰에 도달한다. 그럼으로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인생의 문제는 그에게 해소되었다. 의문의 불꽃이 꺼진 이제 철학은 필요없고 당연히 돈도 필요없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의식적 극복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2차대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주저없이 교수직을 잠시 접어두고 공습을 받는 병원에서 의료봉사를 지원한다.
무서운 점은 비트겐슈타인이 생각과 행동을 일치하려는 노력을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거침없이 요구했다는 점이다. 2차대전 때 결혼까지 하고 가정을 가진 제자가 입대했을 때에도 전방으로 자원하라고 충고했다는 사실이다. 의료부대에서 적응을 못하는 제자(허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나 자신은 용기가 거의 없는 사람이다. 너보다 훨씬 더 못하다. 하지만 나는 오랜 투쟁 끝에 용기를 끌어내어 무 언가를 실행한 후에는 언제나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느꼈다."
그는 이런 충고에 대해 나올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반대를 예상하면서, “네게 가족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네가 자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면, 가족에게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660-661쪽
어찌보면 "위험하게 살아라"라는 모토로 살아간 독재자 무솔리니의 가혹한 멘탈리티와 연결되는 듯하다. 이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친구였던 파니아 파스칼은 비트겐슈타인에게 인생의 충고를 구하는 일은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수학에 뛰어난 소질을 가졌던 케임브리지의 제자 프랜시스 스키너를 공장노동자가 되라고 설득한 적이 있었다(결국 그는 나사 만드는 일을 하다가 병으로 요절했고 그의 가족은 비트겐슈타인을 원망했다). 심지어 어떤 제자에게는 죽는 길을 선택하도록 충고한 일도 있다.
- "혹시라도 만약 육박전을 하게 된다면 그저 선 채로 죽음을 당해야만 한다."
“이 충고는 바로 그가 1차 대전 동안 그 자신에게 했던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드루어리는 적었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661쪽
자주 인용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최후는 다음과 같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828쪽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말, 죽는 것이 "좋다"는 것, 제3자가 볼때 누가 봐도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음에도 "멋진 삶을 살았다"는 자기 인식은 인생의 완진감(完盡感)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말한 "다 이루었다"와 같은 맥락...삶의 에너지를 남김 없이 완전연소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50대에 찍은 사진을 보면 50대의 대학교수 치고는 너무 삭았다. 마치 땡볕 아래서 30년 노가다를 뛰다가 골병든 육체노동자의 몰골이다.
매일 같이 탈진하거나 미치기 직전까지 철학적 사유를 몰아부치다가 폭삭 늙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코넬 대학 강연에 갔을 때 학생들이 그를 노숙자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와 함께 철학 토론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기가 질릴 정도의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793쪽
그는 자신의 은사인 무어가 말년에 건강을 위해 철학 토론을 피하는 것을 보면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무어는 뇌졸중에 걸렸고, 그의 아내는 어떠한 종류이건 흥분이나 피로를 금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무어는 미리 부인에게 비트겐슈타인이 오면 오래 머물게 하지 말라고 말해둘 정도였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680쪽
여기서 나는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발견한다. 당신이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하자.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어떤 절대적 진리를 깨달아서 황홀한 신비 체험을 하고 도사가 되거나, 절대자를 통해 영생불멸이 보장된 존재로 거듭나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냥 여기서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 그뿐이다. 다만 그 일을 더 넓게, 혹은 더 깊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처럼,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이틀 전이자 의식을 잃기 하루 전인 1951년 4월 27일까지 철학 연구를 수행했다. 그가 최후로 쓴 것은 <<확실성에 관하여>>의 마지막 단평이었다. 무어에게 요구했던 대로 '장화를 신은 채로' 죽은 셈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선택한 일을 목숨을 걸고 해내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몽크가 쓴 평전의 제목처럼 천재라는 의무(The Duty of Genius)를 완수하기 위해 일평생 분투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적 가치를 생산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회상록>>을 쓴 제자 노먼 맬컴은 그의 삶이 비관적이고 불행했음에도 죽을 때 "멋진 삶"이었다고 말한 것이 기묘한 감동을 자아낸다고 썼다. 인생의 의미가 객관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에 있다고 볼 때, 굳이 따진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멋진 삶'을 사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행복한 삶 또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다만 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삶을 살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백석이 쓴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운명지어진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랜시스 잼과 더불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넣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듯싶다.
ps. 쿠르트 부흐테흘, 아돌프 휘프너의 <<비트겐슈타인>> 마지막 장면도 나쁘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고트프리트 켈러를 최고의 독일 산문 작가로 평가했는데, <<취리히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우르줄라>에서 우리히 츠빙글리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을 특히 좋아하여 가족들에게 반복해서 읽어주었다 한다.
부흐테흘과 휘프너는 "이것을 '경이로웠던' 투쟁을 극복해낸 완전한 안도감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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