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삶의 의미를 묻는 분들이 꼭 하는 말 가운데 "어차피 죽을 텐데..."라는 표현이 있는데 질문하신 분도 마찬가지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를 볼 때 "어차피 끝날 텐데 영화는 도대체 왜 보지?"라고 질문했던 적이 있나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 "어차피 이야기가 끝날 텐데 소설을 왜 읽지?"라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나요? 아마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논리에 설득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인생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거나, 셰익스피어가 말한 대로 한 편의 연극이라고 보았을 때, 이야기가 끝난다고 해서, 연극의 막이 내려온다고 해서 그것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듯이, 삶이 어차피 죽음으로 끝난다고 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허무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를 봤는데, 소설을 봤는데 재미가 너무 없을 때 혹은 예술적 가치가 형편이 없을 때 관객이나 독자가 허탈함을 느낍니다.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았는데 허무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이 어떤 측면에서 가치없는 삶이(라고 판단하)므로 허무감을 느끼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가치라는 게 뭘까요? 마르크스처럼 노동의 응결물로 볼수도 있고, 철학자 로버트 노직처럼 유기적 통일성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그저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좋은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기타 여러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유력한 하나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대상들을 말합니다. 우선은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은 나에게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나에게는 소중한데 타인에게는 쓸모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가치는 있되 객관적 가치는 없는 경우입니다. 가치판단 주체의 범위에 따라 나에게 중요한 것, 가족에게 중요한  것, 사회에게 중요한 것, 인류에게 중요한 것, 동물에게 중요한 것, 생명체에게 중요한 것, 지구에게 중요한 것, 신 또는 우주에게 중요한 것 등으로 가치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가치를 생산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들, 즉 가치를 생산하는 삶을 우리는 가치있는 삶이라 부릅니다. 자기만을 위한 작은 가치를 생산해서 주관적 만족에 그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더 큰 가치를 생산하고 이 가치를 가족, 이웃, 사회, 역사, 생명, 신 또는 우주만물과 주고받음에 성공할 때 더욱 만족스런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주관적 가치만을 고수할 수도 있겠지만, 주관적인 가치에 머무는 것은 객관성을 상실하여 가치의 교환에 실패하므로 결국 주관적 만족을 파괴하는 결과로 되돌아 오게 됩니다. 이 경우 삶의 의미는 축소됩니다. 반대로 단계적으로 주고받음의 범위를 넓혀서, 더 넓은 가치의 그물망 속으로 자기의 범위를 확대해나갈 때, 즉 가치의 확대재생산과 교환이 이루어질 때 삶이 의미 있어집니다.

가치를 생산하고, 가치의 교환에 성공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으시다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하다고요? 그렇다면 현재의 가치를 생산하는 자기 자신의 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치의 단순재생산은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지므로 점점 더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때는 더 큰 가치의 연결망 속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것이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동네축구에 만족 못하고 국가대표로 올라설 때, 국가대표로 만족 못하고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설 때, 즉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큰 가치의 네트워크 속으로 연결되었을 때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가치를 생산하고, 가치의 교환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여 더 큰 가치의 생산과 교환의 단계로 올라섰는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않으시다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하다구요? 그렇다면 현재의 가치판단 활동을 수행하는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뇌 기능이 정상일 경우 인생의 의미는 대체로 가치의 생산 및 교환의 크기와 비례하여 크거나 작아집니다.

(*개정판 수정 사항: 구판에서는 가치의 생산만을 말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생산 및 교환' 전체를 다 말해야 함.)

Posted by 깊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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