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안철수가 이번 대선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비율이 높은 것 같다. 이들의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는 모든 사람에게는 권력욕이 있다.(따라서 안철수도 당연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둘째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높다. 따라서 안철수는 당연히 대선에 나온다. 이들의 근거는 정치계에서 숱한 사람을 보아왔지만 첫번째 조건에서 벗어난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고, 안철수도 이점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서울대 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안철수-경영의 원칙>을 읽어보고, 지금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건대, 안철수가 정치에는 참여하되, 이번 대선에 직접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이 90%쯤은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근거는 안철수가 위에서 언급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상정인 방식, 즉 권력의지와 여론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분석 결과다(이 방식으로 어설프게 의사결정을 내렸다가 망한 케이스로 엄기영을 들 수 있다). 안철수는 정치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경영학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정치부 기자는 없는 것 같다.
안철수는 백신 연구소를 10년 정도 경영하다가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MBA를 공부한다. 안철수의 책을 보면 그의 의사결정 모델이 MBA의 경영전략 과목에서 배우는 프로세스, 즉 Vision이라는 최상위 가치로부터 Mission을 도출하고 이 미션 달성을 위해 내부 역량과 외부 환경을 분석(SWOT 분석)하여 최적의 전략을 도출하는 방식에 입각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 모델은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사업 전략을 수립해본 사람들은 거의 아는데,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을 권력의지 하나로 설명하려는 주관적 관념론의 오류에 쉽게 빠져든다.
주관적 관념론 모델은 인생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사리분별력이 약한 엄기영류 정치 지망생들의 의사결정 방식은 쉽게 설명하지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히 세속적 성공을 넘어 최소한 삶의 의미라는 수준까지 도달한 사람들의 판단은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생의 목적이 돈이나 세속적 성공이나 주관적 행복 정도에 머문다면 아직 삶의 의미라는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안철수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이익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익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의사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안철수는 이익을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더 큰 이익이 따라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의 전략적 의사 결정 모델이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실행해보면 복잡하지만, 크게 보면 핵심적으로는 비전(추구하는 가치)과 자기의 강점(Strenth)에 의해 결정된다. 외부의 기회 위협 요인은 내적인 에너지가 충분히 강하다면 단기적인 굴곡이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돌파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안철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데 그는 인생의 의미를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있다.
세상에 긍정적 흔적을 남기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삼는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놀랐던 것은 그의 얘기가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 쓴 <철학과 인생의 의미>(in 《Philosophical Explanations》)라는 글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로서 trace(자취, 흔적)의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노직의 철학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의미의 의미에 대한 노직의 개념 분석을 바탕으로 《굿바이 카뮈》(필로소픽, 2012)라는 책을 쓰면서 삶의 연역적 의미(귀납적 의미는 따로 있다)를 "더 넓은 가치의 연결망을 향한 자기 초월의 과정"으로 정리한 바 있는데, 안철수의 인생관과 실제 삶의 궤적이 내가 정리했던 삶의 의미 모델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에, 안철수의 책을 읽자마자 그의 머리 속에서 전개되고 있을 논리 회로가 명쾌하게 이해되었던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인생 궤적은 분명히 '더 넓은 가치의 연결망을 향한 자기초월의 과정'에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를 하다가 우연히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일에 접어든 그는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두 가지 일을 7년 동안 병행하다가 고민 끝에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벤처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때 그의 생각은 의사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지만,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일은 내가 더 잘할 수 있고(=더 큰 객관적 가치), 그 일에서 재미를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안정적으로 보였던 의대교수직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던진 것, 이것이 더 큰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첫번째 자기 초월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안철수 연구소를 10년 정도 경영하고 안정 단계에 들어선 후, 이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단지 한 기업의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업계 전반의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 유학을 떠나 두 개의 MBA를 얻고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융복합 교수가 되는 길을 걷게 된다(이 과정에서 청년 멘토의 역할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것이 두번째 자기 초월이다.
더 큰 객관적 가치를 위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생의 의미 모델에서 볼 때, 안철수가 지금까지 "의대교수->벤처기업인->청년 멘토->융복합 교수=>서울시장 도전"의 과정을 거친 후에 정치 참여를 다음 수순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안철수는 정치 참여를 통해 하나의 기업이나, 특정한 산업 분야, 또는 학계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우리 나라 전체를 위해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치 참여가 곧 대통령 출마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안철수의 인생의 의미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짜깁기한 것이라든지, 멋있게 보이려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아니라 상당히 철학적으로 탄탄한 고민에 바탕을 둔, 심사숙고 끝에 나온,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념이며, 삶의 과정 속에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 온 것으로 본다.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의 가치는 상당한 의미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최상위 가치가 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은 약간은 세상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도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우습게 보는 그런 성향이 있다.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300개의 대선 플랜이 돌아다닌 다는 여의도의 국회의원들로서는 잘 이해가 안될 수 있다.
내가 볼 때 안철수의 말을 80% 정도만 믿어준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아니라 세상에 긍정적인 자취를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가치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안철수의 미션은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이러한 비전에서 도출된다. 따라서 세상에 긍정적인 자취를 남기기 위해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 김어준이 주장하는 대로 문재인이) 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은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제1목표였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지만, 안철수는 별다른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다. 아직까지 정치 분야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았고, 이해 관계가 얽힌 주변 세력도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에 따른 부담도 적다. 오히려 지지율 1위 상태에서 대통령 후보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될 역사적인 명성도 무시못할 가치다. 그 자체로도 한국 정치사에 의미있는 흔적이 될 수 있다.
<경영의 원칙>에서 안철수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라는 상식에 의문을 품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윤은 사업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다가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장기적 이익을 얻는다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고서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고 말한다. 안철수에게 이익은 목표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뒤따라 오는 결과일 뿐이다. 같은 논리를 정치에 적용한다면, 안철수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목표일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미래의 가치가 목표일 것이다.
안철수는 좋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청년들에게 조언했다. 자기가 백신 개발을 선택할 때 그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조언을 자기에게 적용해봤을 때, 정치 분야가 과연 안철수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고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인터뷰를 보면 둘 다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이 되고 싶고, 정치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정치를 통해서 이루려는 어떤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서 구현하려는 가치가 그가 원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치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안철수의 가치 체계에서 도출된 미션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긍정적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전제로, 이제 SWOT 분석을 해보자. 피터 드러커를 즐겨 인용하는 안철수는 드러커가 말한대로 강점을 중심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원칙대로 하면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다 봐야 하지만 크게 보아 강점 분석에서 전략이 대체로 결정된다. 현재 높게 나오고 있는 지지율은 외부의 가변적 변수지만 강점은 내부의 상수다. 내면의 강점은 단기적으로는 가변적이지 않다. 강점이 충분하다면 외부의 가변적 요인들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데, 안철수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강점이 있다고 판단할까? 적어도 현재 기준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지지율 1위라는 것은 단지 Opportunity 즉 SWOT의 네 변수 가운데 1/4의 요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가변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안철수가 현재 자신을 역량을 평가할 때,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이 야권 지지율 2위인 문재인보다 낫다고 스스로 판단할까? 안철수가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않는 것은 당선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자신의 강점에 대해 자기 확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권력욕으로 인해 객관적 판단력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자신의 정치 역량이 문재인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상의 목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모험을 걸고 베팅을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번 대선에서 선수로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을 지원하여 서울시장이 되게 만듦으로써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문재인을 도와 대통령이 되게 만듦으로써 또한번 큰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차기 정부에서 정치적 역량을 키워서 강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즉 SWOT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안철수 입장에서는 이번이 아니라 차차기에 나오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혹시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계속 언급되고 일거수 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 힘들어서
아예 정치 진출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일생 동안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살아온 자기 초월의 과정을 중단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이것도 지금까지의 그의 삶의 궤적으로 볼 때 일관성을 잃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만족스런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안철수가 이번 기회에 정치에 참여하되, 반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여 대선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반한나라 진영으로서는 앞으로 10년을 집권할 두 명의 대권 후보를 안정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안철수 입장에서 한 가지 문제는, 서울대 교수직을 맡은 지 몇 개월이 안된 상태라는 점일 것이다. 자기 초월이란 기본적으로 하나의 단계를 완성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 더 큰 존재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철수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후에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서울대 융복합 교수로서 자기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정치 영역으로 투신하는 모양새가 되는 점이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일 수 있다. 이 부분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실존적으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돌파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나는 서울대 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안철수-경영의 원칙>을 읽어보고, 지금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건대, 안철수가 정치에는 참여하되, 이번 대선에 직접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이 90%쯤은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근거는 안철수가 위에서 언급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상정인 방식, 즉 권력의지와 여론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분석 결과다(이 방식으로 어설프게 의사결정을 내렸다가 망한 케이스로 엄기영을 들 수 있다). 안철수는 정치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경영학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정치부 기자는 없는 것 같다.
안철수는 백신 연구소를 10년 정도 경영하다가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MBA를 공부한다. 안철수의 책을 보면 그의 의사결정 모델이 MBA의 경영전략 과목에서 배우는 프로세스, 즉 Vision이라는 최상위 가치로부터 Mission을 도출하고 이 미션 달성을 위해 내부 역량과 외부 환경을 분석(SWOT 분석)하여 최적의 전략을 도출하는 방식에 입각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 모델은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사업 전략을 수립해본 사람들은 거의 아는데,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을 권력의지 하나로 설명하려는 주관적 관념론의 오류에 쉽게 빠져든다.
주관적 관념론 모델은 인생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사리분별력이 약한 엄기영류 정치 지망생들의 의사결정 방식은 쉽게 설명하지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히 세속적 성공을 넘어 최소한 삶의 의미라는 수준까지 도달한 사람들의 판단은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생의 목적이 돈이나 세속적 성공이나 주관적 행복 정도에 머문다면 아직 삶의 의미라는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안철수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이익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익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의사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안철수는 이익을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더 큰 이익이 따라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의 전략적 의사 결정 모델이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실행해보면 복잡하지만, 크게 보면 핵심적으로는 비전(추구하는 가치)과 자기의 강점(Strenth)에 의해 결정된다. 외부의 기회 위협 요인은 내적인 에너지가 충분히 강하다면 단기적인 굴곡이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돌파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안철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데 그는 인생의 의미를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저 같은 경우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영어 표현으로는 'Make a difference'인데, 어떤 뜻이냐면,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크로마뇽인이 동굴에 벽화를 그렸어요. 그러면 현대의 우리는 벽화를 보면 누가 살았는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살아서 거기에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알 수 있잖아요....제가 존재했을 때와 존재하지 않았을 때, 후세에 뭔가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름을 남기는 환상은 없어요. 이름은 남지 않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든지 뭔가 바람직한 제도가 생긴다든지 또는 제가 쓴 책이 남는다든지 또는 제가 만든 조직이나 일이 남는다든지 하면 그럼 제가 살았다는 흔적은 남는 거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중요해요(p.97-98).
세상에 긍정적 흔적을 남기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삼는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놀랐던 것은 그의 얘기가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 쓴 <철학과 인생의 의미>(in 《Philosophical Explanations》)라는 글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로서 trace(자취, 흔적)의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노직의 철학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의미의 의미에 대한 노직의 개념 분석을 바탕으로 《굿바이 카뮈》(필로소픽, 2012)라는 책을 쓰면서 삶의 연역적 의미(귀납적 의미는 따로 있다)를 "더 넓은 가치의 연결망을 향한 자기 초월의 과정"으로 정리한 바 있는데, 안철수의 인생관과 실제 삶의 궤적이 내가 정리했던 삶의 의미 모델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에, 안철수의 책을 읽자마자 그의 머리 속에서 전개되고 있을 논리 회로가 명쾌하게 이해되었던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인생 궤적은 분명히 '더 넓은 가치의 연결망을 향한 자기초월의 과정'에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를 하다가 우연히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일에 접어든 그는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두 가지 일을 7년 동안 병행하다가 고민 끝에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벤처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때 그의 생각은 의사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지만,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일은 내가 더 잘할 수 있고(=더 큰 객관적 가치), 그 일에서 재미를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안정적으로 보였던 의대교수직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던진 것, 이것이 더 큰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첫번째 자기 초월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안철수 연구소를 10년 정도 경영하고 안정 단계에 들어선 후, 이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단지 한 기업의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업계 전반의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 유학을 떠나 두 개의 MBA를 얻고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융복합 교수가 되는 길을 걷게 된다(이 과정에서 청년 멘토의 역할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것이 두번째 자기 초월이다.
더 큰 객관적 가치를 위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생의 의미 모델에서 볼 때, 안철수가 지금까지 "의대교수->벤처기업인->청년 멘토->융복합 교수=>서울시장 도전"의 과정을 거친 후에 정치 참여를 다음 수순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안철수는 정치 참여를 통해 하나의 기업이나, 특정한 산업 분야, 또는 학계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우리 나라 전체를 위해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치 참여가 곧 대통령 출마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안철수의 인생의 의미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짜깁기한 것이라든지, 멋있게 보이려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아니라 상당히 철학적으로 탄탄한 고민에 바탕을 둔, 심사숙고 끝에 나온,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념이며, 삶의 과정 속에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 온 것으로 본다.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의 가치는 상당한 의미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최상위 가치가 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은 약간은 세상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도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우습게 보는 그런 성향이 있다.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300개의 대선 플랜이 돌아다닌 다는 여의도의 국회의원들로서는 잘 이해가 안될 수 있다.
내가 볼 때 안철수의 말을 80% 정도만 믿어준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아니라 세상에 긍정적인 자취를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가치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안철수의 미션은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이러한 비전에서 도출된다. 따라서 세상에 긍정적인 자취를 남기기 위해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 김어준이 주장하는 대로 문재인이) 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은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제1목표였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지만, 안철수는 별다른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다. 아직까지 정치 분야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았고, 이해 관계가 얽힌 주변 세력도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에 따른 부담도 적다. 오히려 지지율 1위 상태에서 대통령 후보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될 역사적인 명성도 무시못할 가치다. 그 자체로도 한국 정치사에 의미있는 흔적이 될 수 있다.
<경영의 원칙>에서 안철수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라는 상식에 의문을 품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윤은 사업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다가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장기적 이익을 얻는다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고서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고 말한다. 안철수에게 이익은 목표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뒤따라 오는 결과일 뿐이다. 같은 논리를 정치에 적용한다면, 안철수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목표일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미래의 가치가 목표일 것이다.
안철수는 좋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청년들에게 조언했다. 자기가 백신 개발을 선택할 때 그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조언을 자기에게 적용해봤을 때, 정치 분야가 과연 안철수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고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인터뷰를 보면 둘 다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이 되고 싶고, 정치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정치를 통해서 이루려는 어떤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서 구현하려는 가치가 그가 원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치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안철수의 가치 체계에서 도출된 미션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긍정적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전제로, 이제 SWOT 분석을 해보자. 피터 드러커를 즐겨 인용하는 안철수는 드러커가 말한대로 강점을 중심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원칙대로 하면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다 봐야 하지만 크게 보아 강점 분석에서 전략이 대체로 결정된다. 현재 높게 나오고 있는 지지율은 외부의 가변적 변수지만 강점은 내부의 상수다. 내면의 강점은 단기적으로는 가변적이지 않다. 강점이 충분하다면 외부의 가변적 요인들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데, 안철수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강점이 있다고 판단할까? 적어도 현재 기준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지지율 1위라는 것은 단지 Opportunity 즉 SWOT의 네 변수 가운데 1/4의 요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가변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안철수가 현재 자신을 역량을 평가할 때,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이 야권 지지율 2위인 문재인보다 낫다고 스스로 판단할까? 안철수가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않는 것은 당선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자신의 강점에 대해 자기 확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권력욕으로 인해 객관적 판단력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자신의 정치 역량이 문재인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상의 목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모험을 걸고 베팅을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번 대선에서 선수로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을 지원하여 서울시장이 되게 만듦으로써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문재인을 도와 대통령이 되게 만듦으로써 또한번 큰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차기 정부에서 정치적 역량을 키워서 강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즉 SWOT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안철수 입장에서는 이번이 아니라 차차기에 나오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혹시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계속 언급되고 일거수 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 힘들어서
아예 정치 진출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일생 동안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살아온 자기 초월의 과정을 중단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이것도 지금까지의 그의 삶의 궤적으로 볼 때 일관성을 잃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만족스런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안철수가 이번 기회에 정치에 참여하되, 반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여 대선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반한나라 진영으로서는 앞으로 10년을 집권할 두 명의 대권 후보를 안정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안철수 입장에서 한 가지 문제는, 서울대 교수직을 맡은 지 몇 개월이 안된 상태라는 점일 것이다. 자기 초월이란 기본적으로 하나의 단계를 완성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 더 큰 존재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철수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후에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서울대 융복합 교수로서 자기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정치 영역으로 투신하는 모양새가 되는 점이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일 수 있다. 이 부분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실존적으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돌파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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